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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혹한 판결은 죄
작성자 사온데 (ip:119.204.70.169)
  • 작성일 2020-06-07 21:35:28
  • 추천 4추천하기
  • 조회수 267

"생존권은 소유권보다 우선하므로 무죄다."

   

이탈리아 대법원의 판결문입니다.


노숙자가 가게에서 빵을 사면서 한국 돈 5,300원 어치 정도의 치즈와 소시지를 훔친 도둑에게 내린 최고법원의 판결입니다. 어찌 보면 이런 판결이 도둑질을 합리화해 사회기강을 문란케 할 것 같은 판결입니다. 대법원이 왜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 생각해 보면 하급 법원의 지나친 판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급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노숙자에게 6개월 징역과 10만 원 벌금형을 때렸습니다. 대법원은 형량을 줄일 수는 없고 유무죄만 판결하므로 무죄를 판결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도둑질을 당할 뻔한 가게 주인이 마음씨가 후해서  도둑에게 그냥 5,300원 어치 식품을 적선한다 생각하고 문제 삼지 않았으면 법원이 판결할 이유가 없을 수도 있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안은 현장에서 경찰이 도둑을 현행범으로 잡아 법대로 수사하고 검사 역시 법대로 기소하고 판사 역시 법대로 판결했기 때문에 대법원 판사들이 고심 끝에 내린 판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법원 판사들은 노숙자가 배가 고파 생존을 위해 빵을 구매하면서 소량의 치즈와 소시지를 도둑질한 것에 대해 하급심에서 6개월 징역, 10만 원 벌금을 판결한 것이 너무 가혹한 형벌이라 생각했기에 위와 같은 이유를 대서 무죄로 판결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도둑질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어찌 죄가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죄가 있다 해도 죄의 크기에 비해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것 또한 죄라고 생각합니다. 소유권을 가진 가게 주인이나 체포권을 가진 경찰이나 기소권을 가진 검사나 판결권을 가진 판사나 모두 자신의 권한을 잘못 행사하면 그 또한 죄라 생각합니다. 가게주인, 경찰, 검사, 판사 모두 법적으로 주어진 자기의 권한을 행사했을 뿐인데 무슨 얼어죽을 죄냐구요? 죕니다. 인정머리 없는 인간의 행위는 죄입니다. 대법원  판사들이 노숙자의 행위를 무죄로 판결함으로써 가게주인, 경찰, 검사, 하급심 판사 모두를  괘씸죄로 처벌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혹한 형벌에 얽힌 사건 한두 가지 생각해봅니다.  먼 옛날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널리 세상에 알려진 일들입니다. 역사서에 나오는 일들이니까요. 빵 한 조각 도둑질했다가 19년 형을 살았다는 19세기 장발장 이야기야 소설이니까 생략하겠습니다.

 

첫째,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오도하여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신을 모독했다는 죄"로 사형을 당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사형판결은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다는 그리스의 아테네 한 복판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테네 시민들이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내린 판결입니다. 군중들이 그런 판결을 내리도록 유죄를 주장하는 연설자들이 무죄를 주장하는 연설자들보다 더 설득력 있게 연설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논리적으로 말을 잘 하는 것이 아테네 시민의 생명에 얼마나 위협적이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말 때문에 사형에 처한다는 것은 분명 가혹한 형벌입니다.

 

둘째, 중국 한나라 무제 때의 사마천 이야기입니다. 자기 친구인 이릉을 변호했다가 당시에 사형보다 더 치욕스럽다는 궁형에 처해지는데 궁형은 남자의 성기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사마천은 이릉이 5천 명의 보병을 이끌고 전장에 나아가 8만 명의 흉노 기병과 붙어 접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1만 명 이상의 흉노군을 죽이고도 결국 패전해 400여 명의 군사와 함께 항복한 사건에서 이릉의 항복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황제에게 의견을 개진합니다. 이런 사마천의 의견에 대해서 사형(나중에 궁형)을 내리는 것은  또한 가혹한 형벌입니다. 사마천은 자서전에서 이 사건을 두고 "이게 나의 죄인가" 라고 한탄합니다. 당시가 황제라는 절대군주 시대여서 황제의 말이 곧 법일지라도 황제가 사마천에게 내린 벌은 가혹합니다.

 

한무제는 전쟁을 좋아해 중국의 땅을 많이 넓혔습니다. 알렉산더도, 나폴레옹도, 징기스칸도, 필리페도, 빅토리아도, 광개토도 한무제처럼 자기 나라 국토를 많이 넓혔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자들에게 대왕 또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곤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앞으로는 나쁜 인간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었으면 합니다. 자기 나라 국토를 넓히기 위해 수없이 많은 생명을 죽게 만들고 불구자로 만든 이런 류의 인간들을 단죄하는 역사서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한무제 같이 가혹하게 형벌을 내리는 황제가 있는가 하면 가혹한 형벌을 폐기한 황제도 있습니다. 한무제의 할아버지인 한문제(文帝)는 당시에 있던 다섯 가지 형벌을 없앴습니다. 다섯 가지 형벌은 모두 신체를 상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몸에 상처가 나는 형벌을 받으면 죄인이 죄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어도 새삶을 살 수 없다는 이유로 문제(文帝)는 몸을 상하게 하는 형벌을 폐기했습니다.


얼굴에 죄목을 문신하는 묵형, 코를 베는 의형, 발뒷굼치를 베는 비형, 거세하는 궁형, 참수하는 대벽 등 5형을 폐지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생각해 봐도 문제는 참 훌륭한 사람입니다. 황제가 갖는 권한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고 백성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황제가 문제입니다.


한문제(文帝)는 황제 비방죄도 폐기시켰습니다. 문제는 황제 비방죄를 두면 황제를 욕한다는 이유로 관리들이 백성을 잡아다 괴롭힐 것이고 그러면 백성들이 입을 닫게 돼 결국 황제는 민심을 알 수 없게 된다는 이유로 황제 비방죄를 폐기한 겁니다.

 

넷째, 중국 진(晉)나라 때 이리(李離)라는 형벌 다루는 관리가 있었습니다. 이리는 한 죄인을 사형으로 다스렸습니다.  이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 사용의 오류를 뒤늦게 깨닫고 벌을 자청했습니다. 자신이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판단착오로 죽였으므로 자신도 똑같이 사형을 당해야 한다는 논리로 자기에게 형벌을 가한 것입니다.


한나라의 문제, 진나라의 이리는 자신의 직분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법률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도적도 늘어난다." 언뜻 생각하면 도적이 많아지기 때문에 법률이 늘어날 것 같은데 노자는 반대로 법률이 많아지면 도적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법이 많아지면 법을 존중해 지키려 드는 게 아니고 많은 법을  지키기 어려워 오직 피하려고만 하므로 법은 오히려 경시된다는 것입니다. 법을 경시하는 사람이 늘기 때문에 자연히 도적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마천은 이런 말을 합니다. "법률은 통치수단일 뿐이고 사회를 깨끗하게 하는 근본이 아니다. 사회를 깨끗하게 하는 근본은 도덕이다." 그리고 공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사회를 깨끗하게 하려면 윗자리에 도덕적인 사람을 앉혀야 한다." 즉 법률로서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니고 인간의 도덕성을 고양시킴으로서 깨끗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흉칙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강력한 법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결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었음을 2-3천여 년의 기록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한문제(文帝)는 고래보다 덩치 큰 새도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법망을 넓게 해놓았지만 흉악무도한 범죄는 줄고 국가는 잘 운영되었습니다. 한문제는 도덕을 기반으로 하는 덕치(德治)를 몸소 행했습니다. 한문제에게 반면교사가 된 것은 진시황의 진(秦)나라였습니다. 법률 조항의 숫자가 극도로 많았던 진나라는 진시황이 죽자마자 채 5년도 안 돼 멸망했습니다.

  

그럼 사회를 깨끗하게 한다는 도덕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도덕이란 말은 노자의 사상과 관련이 있는데 도덕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노자와 함께 같은 시대를 살던 공자가 말하는 인(仁)도 또한 도덕 못지 않게 정의 내리기 어려습니다. 예수가 말하는 사랑도 부처의 자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도덕, 인, 사랑, 자비 모두 관념적인 말이기 때문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금방 알 것 같은 말들인데 정확히 정의를 내릴려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자기가 느끼는 대로 자기들이 누군가로부터 배운 대로 도덕, 인, 사랑, 자비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그렇게들 행동합니다. 


인간들은 사람을 죽이고 사람에게 상처를 내 불구자로 만드는 전쟁을 수없이 일으키면서도 모두 성인의 말을 들먹입니다. 그러니 도덕, 인, 사랑, 자비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성인들이 살상하지마라고 가르쳤건만 그런 행위가 만연해 참혹하기 그지없는 전쟁놀이를 우리 인류는 지금까지 수없이 해왔으니까요.

 

성인들의 말씀 속에 공통으로 흐르는 사상은 분명히 생명존중입니다. 성인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다 즐거움이 영원한 곳으로 돌아가는데 필요한 마음가짐을 인류에게 제시했는데 과연 우리 인류는 어느 정도나 성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그저 성인들 이름을 팔아 자기의 유익함만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죄는 법률과 계율로만 성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판결에서 판사가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벌의 크기를 결정할 권한이 있을지라도 죄에 비해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것은 판사의 죄입니다. 따라서 판사도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법으로 정한 죄는 아닐 지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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